계명지재 계명지재

학생

학생에게

당신도 빛으로 밝혀질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이야기, 격려, 그리고 조용한 미소.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천히 가도 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 당신입니다.

당신을 위해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사람

업데이트 2026년 11월 2일

Karl Bushby 는 스물아홉에 집을 떠나 쉰일곱에 도착합니다. 삼만 천 마일, 네 개 대륙, 이십팔 년. 그러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른 숫자들입니다. 여덟이었던 아들은 서른여섯,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열두 살 손녀, 그리고 마침내 조국에 닿은 다음 날 아침 상실감 속에서 깨어난 한 사람.

네 세대, 한 화면

2026년 11월 2일, 헐. 왼쪽부터 아들 Adam, Karl, 아버지 Keith, 어머니 Angela, 손녀 Harley.

사진: Leon Neal / Getty Images, Getty 공식 임베드로 표시. 저작권은 촬영자와 Getty 에 있습니다.

이것은 Jonathan Wolfe 가 『뉴욕 타임스』 2026 년 10 월 29 일자로 발표한 기사에 대한 우리의 읽기입니다. 원제는 《After 28 Years Walking Across the Globe, He’s Almost Home》. 원문 (영어) 읽기 →

한 사람이 스물아홉 살에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쉰일곱 살에 도착합니다. 떠나던 해, 아들은 여덟 살이었고 지금은 서른여섯 살입니다. 손녀도 있습니다. 이름은 Harley, 열두 살, 그리고 할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 줄, 이십팔 년
Punta ArenasNogalesBering StraitDoverHull1998.112002.042006.032026.102026.11

아버지가 제안한 베링 해협이 네 개 대륙을 하나의 걷는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총 거리 약 삼만 천 마일, 어느 구간에서도 동력 수단을 쓰지 않았습니다.

경로와 날짜는 Jonathan Wolfe, 『뉴욕 타임스』 2026-10-29 에서. 그림은 Luminis 제작.

모두가 반복하는 숫자는 삼만 천 마일입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그 숫자가 아닙니다.

시작은 평범한 방 하나였습니다.

1990 년대 중반, Karl Bushby 는 영국 육군의 공수부대원으로, 지구에서 가장 긴 도보 경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찾는 경로마다 너무 짧게 끝났습니다. 아버지가 생일 카드에 한 줄을 썼습니다. 베링 해협을 봐라, 겨울에는 얼어붙는다고. Bushby 는 검은 마커를 집어 벍 지도 앞으로 가서 선 하나를 그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내려가, 얼음을 밟고 북미로 건너, 남미 최남단까지. 그리고 그는 그 선의 맨 아래로 날아가, 거기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1998 년 11 월 1 일, 그는 칠레 남단의 Punta Arenas 를 떠났습니다. 가진 돈은 약 오백 달러, 뒤에는 The Beast 라 부르는 개조한 골프 카트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열여덟 마일을 걸으면 좋은 날이었습니다. 초반 구간은 가혹했고, 먹는 것은 대개 주유소 음식이었으며, 뒤받침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소년의 모험 같았고, 그 뒤로는 서서히 고단한 노동으로 바뀜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길 그 자체, 본인이 찍은 영상

2023년,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카자흐스탄 카스피해까지 천 마일. 취재 영상이 아니라 그가 직접 세운 카메라입니다. 이십팔 년의 거의 모든 날에 기자는 없었고, 길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관중도 결승선도 없이, 내일 또 걷는다는 사실만 있었습니다.

영상: Karl Bushby 공식 채널 YouTube @KarlcBushby, 공식 임베드로 재생. 저작권은 저작자에게 있습니다.

2002 년 4 월, 그는 Nogales 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9·11 로부터 오래지 않은 때였습니다. 길가의 호기심의 대상에서, 경찰이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고속도로에서 나가라, 텐트를 걷어라, 광장에서 비켜라. 이듬해 캠나다에서 그는 우연히 카트를 뒤에서 밀어 보았고, 끌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 이십 년 동안 그는 계속 밀며 걸었습니다.

2006 년 3 월, 그는 Dimitri Kieffer 라는 프랑스계 미국인 모험가와 함께 베링 해협의 끄나니는 얼음 위를 걸어 알래스카에서 러시아로 건너갔습니다. 두 주 동안 매일 저녁, 밤을 보낼 만큼 단단한 얼음을 찾아다녔습니다. 밤이 되면 얼음이 몸 아래에서 갈리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느 밤에는 텐트 밑의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해 어둠 속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러시아에 도착했습니다. 국경 경비대는 한 마디도 믿지 않았고,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두 달 가까이 구금되었습니다.

전쟁이 그를 멈추게 했습니다. 경제 붕괴가 멈추게 했습니다. 팬데믹이 멈추게 했습니다. 길이 닫힐 때마다 그는 멕시코로 물러나 통할 길을 기다렸습니다. 체포되고, 추방되고, 빈털터리가 되고, 길을 잃고, 이미 끝난 이야기로 쓰였습니다. 그 횟수는 본인도 세지 못합니다.

두 번째 규칙.

그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 규칙을 부과했습니다. 어떤 동력 수단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걸음을 끝내기 전에는 영국 땅을 밟지 않는다.

세 사람의 이십팔 년
19982026KarlAdamHarley29578360122014

Karl 는 스물아홉에서 쉰일곱까지 걷습니다. 아들 Adam 은 여덟에서 서른여섯으로 자랍니다. 손녀 Harley 는 길의 중간에서 태어나 지금 열두 살입니다. 점선으로 된 막대는 위의 막대에 한 번도 닿은 적이 없습니다.

나이와 날짜는 Jonathan Wolfe, 『뉴욕 타임스』 2026-10-29 에서. 그림은 Luminis 제작.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은 두 번째 규칙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십팔 년 동안 그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아들이 사는 나라였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떠나던 해 Adam 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어릴 적의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일로 그를 탓할 수 있는 정직한 버전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환점은 2004 년이었습니다. Adam 은 열네 살. 그는 알래스카로 날아가, 걸음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아들이 내린 결정은 얼음 위의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렵습니다.

> “I will respect it and I will cheer you on the whole way.”(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길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 > Adam Bushby, Jonathan Wolfe, 『뉴욕 타임스』 2026-10-29 에서

열네 살의 사람이, 자신이 고르지 않은 것을 짊어지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해 둘 가치가 있습니다. 거리의 숫자로 향하는 길에서, 이 대목이 가장 쉽게 건너뛰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2026 년 10 월 초, 그는 영국 해협을 헤엄쳐 Dover 에 상륙했습니다. 어머니 집 현관까지 약 사백 킬로미터. 다음 날 아침, 그는 상실감 속에서 깨어났습니다.

> “I’m about to lose my purpose for living.”(살아갈 목적을 이제 곧 잃으려 합니다.) > > Karl Bushby, Jonathan Wolfe, 『뉴욕 타임스』 2026-10-29 에서

그는 끝이 어떤 모습일지 진지하게 그려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늘 너무 멀어서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한 가지를 두려워하도록 길러집니다. 닿지 못하는 것. 그는 충분히 멀리까지 걸어, 다른 하나의 두려움에 닿았습니다. 아무도 대비시켜 주지 않는 두려움. 당신은 닿게 될 것이고, 당신의 하루하루를 엮어 주던 그것이 거기서 끝난다는 두려움입니다.

그가 가지고 돌아오는 것.

네 개 대륙, 온갖 날씨, 온갖 정부를 거친 뒤 가장 놀랄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은 얼음도 거리도 아닙니다. 낯선 사람들이 친절했다는 것입니다. 수백 명이 잠자리와 음식과 도움을, 때로는 그저 포응을 건넬습니다. 지나온 모든 문화, 모든 나라에서 맞아 주는 기운을 발견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지금 그는 과학 교육자로 일하고 싶어 하며, 이미 학교의 아이들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 “the world is just a much better place than you will imagine”(세상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입니다.) > > Karl Bushby, 학교 아이들에게 하는 말. Jonathan Wolfe, 『뉴욕 타임스』 2026-10-29 에서

이것이 이십팔 년이 샀던 것입니다. 기록이 아닙니다. 이 발견입니다.

이번 달 어느 날, Hull 에서 문 하나가 열립니다. 1998 년 이후 한 번도 그를 위해 열린 적 없는 문입니다. 그 너머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란 열두 살 소녀가, 마침내 그를 만납니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업데이트, 2026년 11월 2일. 그는 집에 닿았습니다. 1998년 11월 1일 칠레 푼타아레나스를 떠났으니 오늘로 꼭 이십팔 년 하고 하루입니다. 마지막 몇 걸음은 기념비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헐의 평범한 거리를 걸어 어머니 Angela 의 집 문 앞에 이르렀고, 그리고 그녀를 안았습니다.

그 문 앞에 다섯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네 세대입니다. 아버지 Keith, 어머니 Angela, 그 자신, 서른여섯 살 아들 Adam, 그리고 열두 살 손녀 Harley. 이 글의 앞부분에서 그에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손녀가 있다고 썼습니다. 그 문장은 그가 집에 닿기 전에 쓴 것입니다.

사진이 누구에게도 이십팔 년을 돌려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다섯 사람을 처음으로 한 화면에 담았을 뿐입니다.

도착해서 처음 꺼낸 말에는 거창한 것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걸로 끝인가요, 끝난 건가요」

그 뒤에 한 두 마디가 어떤 통계보다 이 글의 주제에 가깝습니다.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 오랜 시간 제가 익숙해진 그 집이 아닙니다」 그리고, 「거의 낯선 나라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이십팔 년을 걸은 사람에게 종점은 승리의 순간이 아닙니다. 종점은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됩니다. 길이 없는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지 다시 배우는 일로 시작됩니다.

1. 그는 이십팔 년 동안 들어서지 못했던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그것이 당신이라면, 그 문이 등 뒤에서 닫힌 다음 날 아침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2. 어떤 일이 더 이상 신나지 않게 된 뒤에도, 당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것은 얼마나 됩니까? 무엇이 당신을 머물게 했고, 머무름은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3. 그는 학교의 아이들에게 세상이 생각보다 더 친절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그것을 보여 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출처: Jonathan Wolfe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대학 순위를 읽는 법.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 대해 잴 수 없는 것.

업데이트 2026년 11월 1일

당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 목록은 2024 년에 한 번 해체되어 다시 지어졌고, 올해 또 조용히 바뀌었습니다. 변화의 방향은 옳고, 당신 세대에게 유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당신의 판단을 통째로 맡길 대상은 아닙니다. 읽는 법을 익힐 가치가 있는 네 개의 숫자와, 그 목록이 결코 잴 수 없는 세 가지를 적어 둡니다.

이것은 U.S. News 의 2027 년판 전미 대학 순위 방법론에 대한 우리의 읽기입니다. 원래 순위 페이지 보기 →

2027 년판에서 Harvard 는 1 위가 아닙니다. Princeton 도 아닙니다. MIT 입니다.

2027 년판 전미 대학 순위는 2026 년 9 월 22 일에 발표되었습니다. 상위 열 곳은 이렇습니다.

1. MIT

2. Princeton

3. Harvard

4. Yale

5. Caltech 와 Stanford 공동

7. University of Pennsylvania

8. Duke

9. Johns Hopkins, Northwestern, University of Chicago 공동

리버럴 아츠 칼리지 상위 열 곳은 이렇습니다.

1. Williams

2. Amherst

3. Bowdoin, Claremont McKenna, Pomona, Swarthmore, United States Naval Academy 공동

8. Harvey Mudd

9.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10. Wellesley

기억해 둘 만한 움직임이 둘. MIT 가 1 위에 올라, 2012 년판부터 Princeton 이 지켜 온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Caltech 는 11 위에서 5 위로 올라섰습니다.

십 분을 더 쓸 가치가 있는 물음은 어느 학교가 움직였는가가 아닙니다. 이 목록이 왜 움직였는가입니다. 답은 이렇습니다. U.S. News 는 삼 년 사이에 재는 도구 자체를 두 번 바꾸었고, 두 번째 변경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는 2024 년판으로, 바꾼 것은 잣대였습니다. 두 번째는 올해로, 바꾼 것은 「누구와 나란히 놓고 재는가」였습니다.

2027 년판은 학교를 묶는 기준을 2021 년판 Carnegie 분류에서 2025 년판으로 교체했습니다. 그 결과, 이전에 순위가 매겨졌던 학교의 약 다섯 곳 중 한 곳이 작년과 다른 범주로 옮겨 갔습니다. 모든 학교는 자기가 속한 묶음 안에서 순서가 매겨지므로, 묶음이 바뀐다는 것은 겨루는 상대가 통째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U.S. News 가 스스로 이렇게 주의를 줍니다. 2027 년의 순위를 이전 연도와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이 주의를 들고 위의 목록을 한 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MIT 가 1 위에 올라 십오 년 이어진 자리를 바꾸었다는 것,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표제가 보여 주는 것보다 복잡합니다. 다섯 곳 중 한 곳이 비교 집단을 바꾸었고 발표한 쪽이 해를 넘긴 비교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앞질렀는가」라는 물음 자체가 얼마간 힘을 잃습니다. 이것을 아는 일은 그 소식을 무시할 이유가 아닙니다. 그 소식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순위는 당신이 보러 온 것입니다. 십 분을 더 쓸 가치가 있는 쪽은 왜 바뀌었는가입니다. 이 목록이 재고 있는 것이 2024 년에 한 번 해체되어 다시 지어졌고, 그 재건의 방향이 당신 세대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목록의 이름 붙이는 방식에 대해 한마디. 이것이 사람을 오해하게 합니다. U.S. News 는 매년 가을에 발표하면서 다음 해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래서 2027 년판은 2026 년 9 월에 나온 것이고, 아래에서 말할 대개편은 2024 년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2023 년 9 월에 일어났습니다.

첫째. 이 목록은 「학교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재는 것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를 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2024 년판(2023 년 9 월 발표)에서, U.S. News 는 다섯 개의 지표를 한꺼번에 뺐습니다. 동문 기부율. 고등학교 석차. 최종 학위를 가진 교원의 비율. 학부 소규모 강의 비율. 졸업생 중 연방 학자금 대출을 받은 비율.

이 다섯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고 있는 것은 학교가 손에 쥔 것이지, 학교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었는가가 아닙니다. 기부가 많다는 것은 과거에 들인 사람들이 지금 부유하다는 뜻입니다. 소규모 강의가 많다는 것은 학교에 돈이 있다는 뜻입니다. 박사 학위 교원 비율이 높다는 것은 학교가 그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두 사실이지만, 정작 중요한 물음에는 하나도 답하지 않습니다. 열일곱 살인 사람이 걸어 들어가고, 사 년 뒤에 걸어 나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같은 판에서 네 가지를 새로 넣거나 크게 가중했습니다. 1 세대 대학생의 졸업률, 졸업생 소득과 고졸자의 비교, Pell 보조금 수혜 학생의 졸업률, 그리고 졸업률 예측 초과. 올해의 2027 년판에서는 더한 것이 아니라 바꾸었습니다. 「전공별로 나눈 졸업생의 대표 소득」이 기존의 「졸업생 연방 학자금 대출 중앙값」을 대체했습니다. 가중치는 같은 5 퍼센트이고, 미국 교육부의 College Scorecard 자료로 졸업 사 년 뒤 같은 전공 안에서의 소득을 잽니다.

모두 더하면, 성과 관련 지표가 이제 전체 순위의 52 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 목록의 역사에서 가장 큰 방법론 변경이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많은 주립 대학이 올라가고, 전통적인 학문적 투입으로 명성을 떠받쳐 온 몇몇 학교가 내려갔습니다.

둘째. 이 네 개의 숫자는 읽는 법을 익히는 데 십 분을 쓸 가치가 있습니다.

Pell 보조금 수혜 학생의 졸업률. Pell 은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연방 급여형 장학금입니다. 어떤 학교에서 Pell 을 받은 학생 중 몇 퍼센트가 실제로 학위를 받았는가. 이 숫자는 단단한 물음에 답합니다. 이 학교는 뒷받침 없이 온 사람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가. 아니면 원래 졸업했을 사람에게 증서를 건네고 있을 뿐인가.

졸업률 예측 초과. 학교의 실제 졸업률을, 「이 학교가 받아들인 학생층으로부터 통계 모형이 예측하는 졸업률」과 나란히 놓고 비교합니다. 차이가 플러스면 그 학교는 무언가를 더하고 있습니다. 마이너스면 입학 선발의 질로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목록 안에서 「고르는 일」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 가장 가까운 숫자가 이것입니다.

1 세대 대학생의 졸업률. 부모가 사 년제 학위를 마치지 않은 학생이, 이 학교에서 졸업까지 제대로 다다를 수 있는가. 이 집단이 부딪히는 장애물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입니다. 이 숫자가 실제로 알려 주는 것은, 그 학교의 지원 체계가 정말로 돌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안내 책자 안에만 있는지입니다.

전공별 졸업생 소득. 2027 년판의 새 지표로, 졸업 사 년 뒤의 회수를 잽니다. 그 쓸모는, 그동안 엉켜 있던 두 가지를 떼어 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학교가 준 것과, 당신 자신이 고른 전공. 같은 학교라도 전공이 다르면 소득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아갈 분야의 짐작이 이미 서 있다면, 이것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숫자입니다.

셋째. 솔직히 말하면, 이 목록에는 여전히 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탈한 학교가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이 빠졌습니다. 하버드와 예일의 로스쿨도 빠졌고, 떠나면서 방법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더 뿌리 깊은 문제는 이것입니다. 순위는 지금도 가구 소득, 그리고 입학 당시의 표준화 시험 점수와 강하게 상관합니다. 다시 말해 「최상위」 목록은 지금도 상당 부분 「그 학교가 누구를 들였는가」를 재고 있는 것이지, 「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닙니다. 고등 교육 연구자 Christopher Newfield 의 비판이 바로 이 지점을 겨눕니다. 방법론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에 있던 비판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이 애초에 재려고 하지 않았던 영역이 통째로 있습니다. 캠퍼스의 공기. 예술을 접할 기회. 직업·기술 교육.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받침.

게다가 가중치를 어떻게 바꾸어도 풀리지 않는 구조의 문제가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복잡한 사 년이, 하나의 숫자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원 자료가 말하지 않은, 우리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순위가 재는 것은 학교입니다. 당신이 아닙니다.

어떤 학교가 Pell 졸업률 구십 퍼센트를 내걸 때, 그것은 참인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뒷받침 없이 온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유용한 정보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여도 됩니다. 그래도 그것은 당신이 그곳에서 행복할지, 맞는 사람을 만날지, 어느 평범한 오후에 문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될지를 맞힐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쓸 것인가.

두 학교를 순위로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를 해 보세요. 종이를 한 장 꺼내, 당신이 이 사 년에서 정말로 얻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적습니다. 부모가 당신이 얻기를 바라는 세 가지가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세 가지입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기술을 하나 익힌다」일 수도 있습니다. 「진짜 말을 해 주는 친구를 몇 명 찾는다」일 수도 있습니다. 「자란 곳을 떠나, 삶이 달리 꾸려지는 모습을 본다」일 수도 있습니다.

다 적었으면 목록으로 돌아가, 그 세 가지에 답할 수 있는 숫자를 찾습니다. 답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졸업률 예측 초과는 답할 수 있습니다. Pell 졸업률도 답할 수 있습니다. 답할 수 없는 것도 있고, 그것들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합니다. 지금 그곳에 있는 학생에게 묻기. 동아리 목록 읽기. 하루를 보내 보기.

한마디 덧붙입니다. 지금 당신이 「부모가 바라는 합격처」와 「내가 현실적으로 닿는 범위」 사이에 끼여 있다면, 그것은 다른 주제이고,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짧게 말하면, 가장 위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과, 당신이 최선을 다했는가는 전혀 다른 물음입니다.

마지막으로.

2024 년의 변화는 진짜 전진이었습니다. 물음을 「이 학교는 누구를 합격시켰는가」에서 「이 학교가 가르친 사람은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 이동은 옳습니다.

그래도 물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순위만 읽고 정한 가정은, 가장 중요한 판단을 잡지 한 권에 외주로 넘긴 셈입니다. 당신은 열일곱이고, 손안에 있는 것은 순위가 아니라 한 생의 모양에 관한 결정입니다. 두 개의 숫자는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스스로 내디딜 수밖에 없습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지금 당장 「이 사 년에서 정말로 얻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적으라고 하면, 적을 수 있습니까? 적지 못한다면, 그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계속 생각해 온 것이 「누군가가 당신이 얻기를 바라는 세 가지」였기 때문입니까?

2. 가장 최근에 당신이 무언가의 좋고 나쁨을 순위로 판단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그 순위가 실제로 무엇을 재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3. 당신의 후보 중에서 순위는 가장 낮지만 졸업률 예측 초과는 가장 높은 학교가 있다고 해 봅시다. 이 두 정보가 어긋날 때, 당신은 어느 쪽을 믿고 싶습니까? 왜 그쪽입니까?

출처: U.S. News & World Report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당신 세대가 샤오홍슈에서 찾아낸, 84 세의 케임브리지 교수. 그가 건네는 것은, 사실은, 하나의 방법입니다.

2026년 10월 13일

84 세의 케임브리지 인류학 교수가 열일곱 달 만에 샤오홍슈에서 250 만 팔로워를 모았습니다. 당신들은 그를 Dumbledore 라고 부릅니다. 그가 당신들에게 정말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세 단계의 방법, 그 자신이 social therapy 라 부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밤 당신 자신에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Henry Ren 이 2026 년 10 월 8 일 Bloomberg Weekend 에 발표한 「China's Young People Are Turning to an 84-Year-Old Cambridge Professor」에 대한 저희의 읽기입니다. 원문 (영어) 은 여기에서 →

먼저 사실부터.

2025 년, 84 세의 케임브리지 대학 사회인류학 명예 교수 Alan Macfarlane 가 샤오홍슈 (小红书, Xiaohongshu) 에 짧은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열일곱 달 뒤, 그의 팔로워는 250 만 명을 넘겼습니다. 당신들은 그에게 하나의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Dumbledore 라고.

그 자신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Bloomberg 인터뷰에서 그는 거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 든 영국의 학자가 바다 건너의 젊은 중국 여성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리 없다, 라고. 그러나 당신들은 진지했습니다. 당신들 중 한 사람이 그의 댓글창에 이렇게 썼고, 그 한 줄은 기사 안에서 인용되었습니다. "저희가 정말로 길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는, 여러 거시적 요인들 앞에서, 극도로 길을 잃고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이 한 문장은, 같은 달에, 중국 도시 청년 실업률이 19% 로 올랐고, GDP 성장률 전망이 5% 아래로 내려갔으며, 막 졸업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려 했던 그 초입의 자리를 AI 가 이미 가져가 버렸음을 알게 된, 그 달의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노동 생활에는 전용의 단어가 있습니다. neijuan, 「안으로 말리기」. 같은 집단의 사람들이 점점 더 힘들게 일하지만, 보상은 늘지 않습니다, 심하면 줄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당신 개인의 성격 결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정한 역사의 순간이 당신들 세대에 구체적인 형태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잃는 것이 올바른 읽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만 그치면 모자랍니다. Macfarlane 의 뛰어남은, 다음 걸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세 단계 방법.

그는 이 방법을 social therapy 라 부릅니다. 누군가 그의 영상 아래에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남길 때마다, 그는 같은 세 단계를 걷습니다.

첫 단계, 문제가 진짜이고, 당신 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그의 첫 문장은 거의 언제나 "이것은 아마도 중국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 꽤 널리 퍼진 불안이고 걱정일 것입니다" 같은 말투입니다. 소박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은, 대부분의 어른이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을 합니다. 그를 보고 있는 그 젊은이를, "나한테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라는 라벨이 붙은 방에서 "여기에는, 같은 처지의 사람이 많이 있다" 라는 라벨이 붙은 방으로 옮겨 줍니다. 방이 바뀌어야, 사람은 다음 말을 들을 힘을 되찾습니다.

둘째 단계, 비어 있지 않은 한 몫의 희망을 건넵니다. "모든 게 잘 풀릴 거예요" 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이제 끝이다" 라고 결정해 버리기 전에, 한 걸음만 더 자신에게 주는 것, 그뿐입니다. 그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걸을 수 있는 한 걸음이 아직 있다, 라고.

셋째 단계, 오늘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작은 한 걸음을 내밉니다. 실제 사례 하나. 어떤 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모두 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의 기대와, 그들이 제게 베푼 모든 것 앞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답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한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가 제안한 영어 문장은 이렇습니다.

> "I probably won't, and this doesn't mean that I don't love you and I haven't tried my best." , Alan Macfarlane, via Henry Ren, Bloomberg Weekend, 2026-10-08

한국어로 옮기면, "저는 아마 해내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것이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도,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도 아니에요."

이 한 문장은 세련되지 않습니다. 격려의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관계를 지킵니다. 이것은 "포기하겠다" 는 선언이 아닙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와 "그 결과는 당신이 바라시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어요", 평소에는 함께 말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나란히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왜 이것이 통하는가.

이것이 통하는 이유는, 여기가 중요합니다, 케임브리지라서도 아니고, 영어여서도 아니고, 오래 살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순서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어른은, 젊은이가 어려운 일을 꺼내기 시작하면, 곧바로 세 번째 단계로 뛰어듭니다, "너는 그렇게 해야지" 라고. 그들은 첫 단계를 건너뜁니다. 건너뛴 첫 단계는, "이 일은 분명 어렵고, 같은 일을 많은 사람이 안고 있다" 라는 한 문장입니다. 이 한 문장이 없으면, 그 뒤의 조언이 아무리 옳더라도 젊은이의 몸이 듣지 못합니다. 그 순간, 그의 몸은 더 깊고 더 무서운 질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느라 벅찹니다, "내가 망가진 쪽의 사람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그 문을 먼저 열지 않으면, 다음 문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덧붙여, 이 "방을 바꿔 주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는 구조는 Macfarlane 이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심리학자 Martin Seligman 이 1967 년 실험실에서 발견했고, 남은 생애 동안 사람들이 거기서 빠져나오는 법을 가르친 학습된 무력감 과, 같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한쪽은 과학으로, 다른 한쪽은 대화로. 핵심은 같습니다. 오래 눌려 와서 "내가 움직여도 소용없다" 고 느끼는 사람에게, "내가 움직였더니, 무언가가 분명히 움직였다" 라는 체험을 한 번 더 갖게 해 주는 것.

이 방법을, 당신은 오늘 밤 자신 위에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세 줄짜리 카드라고 생각하세요.

첫째 줄, 자신에게 씁니다: "지금 나는 ______ 라고 느낀다. 이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오늘 가장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보세요. 공황. 막힘. 수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너" 의 모습에 짓눌리는 느낌. 적어 두세요. 그러고 나서, 이 감정이, 지금 이 순간, 당신과 같은 또래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세요. 당신은 망가진 쪽이 아닙니다.

둘째 줄, 자신에게 씁니다: "다 끝났다고 결정하기 전에, 나에게 한 걸음을 더 준다." "나아질 것이다" 가 아닙니다. 다만, 한 걸음 더.

셋째 줄, 자신에게 씁니다: "오늘 (또는 내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은 ______." 큰 계획이 아닙니다. 인생의 전환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한 걸음.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쉰 자를 쓰기. 이십 분을 걷기. 문제 하나를 풀기. 방의 한 귀퉁이를 정리하기. 당신의 어느 부분도 "못 하겠다" 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작게.

쓰고 나면, 그 카드를 손이 닿는 곳에 두세요.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 옆이거나, 노트의 첫 페이지도 좋습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닙니다. 당신이 몇 번이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세 단계의 모양입니다.

마지막 하나.

Macfarlane 를 250 만 명이 따르는 이유는, 그가 "케임브리지의 정답" 을 가지고 와서 당신에게 건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본래라면 집 근처의 할머니, 멀리 사는 친척, 시간이 있는 삼촌이 전해 주었어야 할, 그러나 여러 이유로 당신에게까지 닿지 못한 무언가를, 케임브리지의 작은 방에서 화면을 통해 당신의 손에 전달해 주는 것, 그뿐입니다.

그 말은, 이 방법은 케임브리지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밤, 자신에게 이것을 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한 번 써 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그것은 낯선 84 세의 영국인의 방법에서,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것이 지금 젊은 세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정답" 이 아닙니다. 크고, 흐릿하고, 자주 불공평한 현실 앞에서 자기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Macfarlane 가 카드 한 장을 건넸습니다. 앞으로 수십 년, 그것을 반복해서 걷는 일은, 당신 자신의 일입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이번 한 주, 당신이 가장 무겁게 지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일까요? 이름을 붙인 뒤,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지금 이 순간,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들 안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2. 오늘 밤, 당신이 실제로 부모에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한 문장을 써 본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솔직하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는 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아름답지 않아도 됩니다. 참되기만 하면 됩니다.

3. 당신 주변의 어른들 가운데, 가장 Macfarlane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먼저 인정하고, 그다음에 도움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그 동작을 어떻게 익혔다고 생각합니까? 이번 주부터, 당신 자신도 같은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출처: Henry Ren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하나의 정직한 질문이 하나의 학문이 됩니다, 2026 래스커상에서 읽어 내는 한 가지 수업

2026년 9월 10일

Yanagisawa 는 자신이 수면에 도달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당시 추적하던 것은, 무엇에 의해 활성화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한 무리의 수용체였습니다. 삼십 년 뒤, 그는 올해의 래스커상을 받았고, 그 연구실에서 완전히 새로운 약물 계열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열정을 유지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십 년 전에 던진 하나의 질문이, 그 답이 훗날 무엇을 위해 쓰일지 알려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Nicoletta Lanese 의 『「미국의 노벨상」이 수면과 혈우병 연구자, 그리고 파킨슨병 대변자 Michael J. Fox 에게 돌아갔다』(Live Science, 2026) 를 읽고. 원문 읽기 →

2026 년의 래스커상 이 9 월 9 일에 발표되었습니다. 세 부문, 세 갈래로 완전히 다른 연구의 길. 나란히 놓고 보면, 「과학 뉴스」라기보다는, 시간에 관한 세 편의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첫 부문, 기초 의학 연구상은 쓰쿠바 대학의 Masashi Yanagisawa 와 스탠퍼드 대학의 Emmanuel Mignot 에게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독립적으로, 오렉신이라 부르는 작은 신경 펩타이드를 발견했습니다. 이 물질은 뇌 깊숙한 곳의 시상하부 안 특정 세포 무리가 만들며, 우리를 깨어 있게 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세포가 사라지면 사람은 깨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이 기면증 의 핵심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장 또렷하게 들어 두고 싶은 것은 Yanagisawa 본인의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수면에 도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그의 실험실이 쫓고 있던 것은 「고아 수용체」라 불리는 한 무리였습니다. 존재는 알려져 있지만 무엇에 의해 켜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수용체들이지요. 그가 표현한 대로라면, 그것은 「생화학의 낚시 여정」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수용체에서 걸렸고, 거기 들어맞는 작은 펩타이드를 낚아 올렸으며, 그 펩타이드를 되짚어 시상하부에, 그리고 각성 그 자체의 메커니즘에 도달했습니다.

Mignot 은 정반대 방향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쓰러지는 개들의 계통을 오래도록 쫓으며, 그 개들에게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빠져 있던 것이 바로 오렉신이었습니다. 두 개의 장거리 달리기가 몇 년 사이에 서로 부딪칩니다. 이 연구가 최상위 상에까지 이른 것은 어느 날의 벼락 같은 발견 때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과학자가, 완전히 다른 질문 위를, 각자 여러 해에 걸쳐 정직하게 걷고, 도중에 서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에서 완전히 새로운 불면증 약물 계열이 나왔고, 더 최근에는 기면증 치료제까지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부문, 임상 의학 연구상은 일본 중외제약의 세 사람, Kunihiro Hattori, Takehisa Kitazawa, Tomoyuki Igawa 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혈우병 A 치료를 위한 에미시주맙 이라는 이중특이성 항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병은 유전자 변이 때문에 몸이 응고 인자 VIII 를 충분히 만들지 못해, 혈액이 정상적으로 응고되지 않는 병입니다. 그들이 만든 항체는 한쪽 팔로 인자 IX 를, 다른 쪽으로 인자 X 를 붙잡아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래 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인자 VIII 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Hattori 가 이 아이디어를 세운 것이 2000 년. 26 년 뒤, 이 약은 백 개 이상의 나라에서 승인되어, 3 만 명이 넘는 혈우병 A 환자가 사용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관절 안쪽에서 피가 고이곤 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반 친구들과 같이 체육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매주 두 번, 몇 시간씩 수혈 라인에 매여 있던 어른이, 그 시간을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의 피드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항체의 모양 덕분에, 수만 개의 하루가 다른 형태를 얻어 왔습니다. 답이 의미를 얻기까지 26 년은, 무척 긴 시간입니다.

세 번째 부문, 공공 서비스상은 Michael J. Fox 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배우입니다. 스물아홉에 조기 발병 파킨슨병, 즉 신경 퇴행 질환 의 한 종류를 진단받았습니다. 서른일곱에 그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2000 년에 Michael J. Fox 파킨슨병 연구 재단을 세웠습니다. 이 재단은 지금까지 파킨슨병 연구에 30 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 세 편의 이야기를 나란히 두면 들려오는 것은 「과학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라는 오래된 문장이 아닙니다. 다른 것입니다.

이십 년 전에 던진 하나의 질문은, 그 답이 훗날 무엇을 위해 쓰일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Yanagisawa 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이 고아 수용체를 켜는 것은 무엇인가」였지, 「기면증을 어떻게 치료할까」가 아니었습니다. Fox 가 바란 것은 「계속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 「삼십 년에 걸쳐, 매년 수억 달러를 움직이는 연구 재단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겨냥하지 않았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형태는, 졸업 연설에서 자주 듣는 「먼저 열정을 찾은 뒤에 시작하라」는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이 세 이야기에서, 열정은 정직한 일 다음에 왔습니다. 앞이 아니라. Yanagisawa 는 처음에 수면 연구자가 아니라 화학자였습니다. 실험실이 쥐의 뇌에서 낚아 올린 그 두 개의 작은 펩타이드가, 그를 수면 연구자로 바꿔 놓았습니다. Fox 는 처음에 대변자가 아니라 시트콤 배우였습니다. 스물아홉의 그 진단이, 세월을 들여 그를, 한 질환 공동체 전체가 훗날 기대게 될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 안에 신경 쓰이는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너무 구체적이거나, 너무 인기가 없거나, 아직 답이 너무 없어서, 남에게 잘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질문. 그것을 적어 두세요. 이십 년 뒤에도 다시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쓸모 있다」고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의 정직한 질문은, 그대로 하나의 학문입니다. 그 답은, 몇 해 뒤에,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당신에게 알려 주러 돌아옵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지금 궁금해하는 하나의 질문 가운데, 주변의 어느 누구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이십 년 뒤에도 다시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적어 두세요.

2. 당신이 아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젊은 시절의 아주 작은 관심 하나에서, 어른의 일 전체가 자라 나온 사람. 되돌아보면, 그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읽힙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물어 온 사람이었다고 읽힙니까?

3. 오늘 손을 대고 있는 이 작은 일이, 십오 년 뒤에 그 일이 열어 준 한 갈래의 길 덕분에 중요한 것이 된다면, 그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기를 바라나요.

출처: Nicoletta Lanese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의 답은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한 학생을 위한 명료함의 수업

2026년 9월 4일

John Bowe는 임원들에게 "중요한 자리에서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코치입니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 하는 비결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두 가지 작은 습관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적게 말하기. 답을 먼저 놓기. 학생일수록 정반대로 하기 쉽습니다.

이 글은 John Bowe가 2026년 9월 2일 CNBC Make It에 발표한 「To "make people want to listen to you," do 2 simple things」에 대한 저희의 읽기입니다. 원문 (영어) 은 여기에서 →

함께 읽기: 얕잡아 볼 때 존엄을 지키는 동작 → Dolly Parton과 「라벨 바꿔 붙이기」

두 방을 그려 보세요.

하나, 세미나. 교수가 당신을 봅니다. "이 정책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둘, 면접. "왜 지난 팀을 떠났습니까?"

각각의 방에서, 당신의 첫 문장은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많은 학생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음, 그,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좀 읽어 봤는데요, 양쪽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또는 이렇게. "여러 요인이 겹친 거고, 부정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이 문장을 다 말할 즈음, 교수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면접관은 이미 다음 질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내용 자체는 옳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습니다.

Bowe의 두 동작.

John Bowe는 임원들에게 "중요한 자리에서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코치이고, 『I Have Something to Say』의 저자입니다. CNBC 글에서 그는 두 동작을 가르칩니다. 둘 다 배울 수 있고, 이번 주에 바로 쓸 수 있습니다.

하나, 적게 말하세요. 다음 것들을 문장에서 잘라 내세요.

하나, 채움말. "음", "그", "저", "있잖아요". 듣는 사람의 귀와 뇌를 힘들게 할 뿐 정보는 늘려 주지 않습니다.

둘, 약화어. "생각하는데요", "아마", "약간", "잠깐만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말이 되면 좋겠는데요". 당신의 말을 미리 절반으로 흐리고, 당신을 확신 없는 사람처럼 들리게 합니다.

셋, 어색한 표현. "여섯이나 일곱쯤"을 "일곱"으로, "월요일 아침, 아니면 늦어도 월요일 오후 세 시 전에 그 숫자를 받을 수 있다면"을 "월요일 오후 세 시까지 받으면"으로 바꾸세요.

넷, 은어.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단어를 쓰세요.

다섯, 질문 밖의 설명. 상대가 묻지 않은 배경 정보를 자진해서 얹지 마세요.

둘, 답을 먼저 놓으세요.

모든 답을, 답 그 자체로 시작하세요.

질문. "이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합니까?" 답. "화요일."

질문. "이 제안에 찬성합니까?" 답. "네."

질문. "그 인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답.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다음에, 필요하다면 세 개에서 다섯 개의 근거를 나열합니다. Bowe의 예. "세 가지 이유로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첫째, 경제성이 달라졌습니다. 둘째, 실사에서 규제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셋째, 이 자본을 쓸 더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권위 있게" 들립니다. 목소리를 낮춰서가 아니라,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서입니다.

왜 학생일수록 이것이 어려운가.

당신은 어릴 때부터 "과정을 보여 주라"고 훈련받아 왔습니다. 수학 숙제는 한 단계씩 다 적어야 하고, 작문에서는 주장 뒤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논문에서 추론을 건너뛰고 결론만 쓰면 감점입니다.

그 습관을, 그대로, 말하기에 가지고 들어옵니다.

누군가 질문하면 머릿속에서 기본 프로그램이 켜집니다. 먼저 사고 과정을 한 단계씩 보여 주고, 마지막에 결론을 놓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그것이 가점입니다. 입에서는 감점입니다.

말은 시간이 귀합니다. 상대가 당신에게 주는 첫 인내는, 처음 십 초입니다. 그 십 초 안에 요점에 이르지 못하면, 상대는 "이 사람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아는 걸까"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동작은 "추론을 포기하라"가 아니라 "순서를 뒤집으라"입니다.

답 먼저, 추론은 그다음. 같은 내용, 다른 신호.

한 주의 작은 실험.

내일부터, 누군가 질문할 때마다, 입을 열기 전에 답을 한 문장으로 응축하세요.

알게 됩니다. 당신의 첫 초안은 마흔 단어일 때가 많지만, 사실 네 단어면 충분합니다. 그 네 단어만 남기세요. 나머지는, 상대가 묻지 않는 한, 스스로 얹지 마세요.

한 주 뒤, 두 가지가 달라져 있을 겁니다. 하나, 회의, 수업, 면접에서 이전보다 덜 긴장하게 됩니다. 둘,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듣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카리스마"가 달라져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첫 문장이 "이 사람은 알고 있다"고 상대에게 믿게 만들어서입니다.

한 걸음 더 뒤로.

이 동작은 한 쌍 중의 한쪽입니다. 다른 쪽은 지난주 저희가 낸 Dorie Clark의 Dolly Parton 이야기입니다.

Dolly의 수업은, 누군가 말로 당신을 작게 만들려 할 때, 어떻게 작아지지 않는가. 그것은 존엄입니다.

Bowe의 수업은, 당신이 제대로 들리기를 바랄 때, 어떻게 들리게 되는가. 그것은 명료함입니다.

두 가지를 합치면,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젊은이가 서 있는 두 발이 됩니다. 밟히지 않는 한 발, 보이는 한 발.

어느 한 발만으로는, 잘 걷지 못합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마지막으로 다섯 단어면 답할 수 있는 질문에 쉰 단어를 쓴 것은 언제였나요? 그렇게 길게 말한 것으로, 당신은 상대에게 무엇을 증명하려 했나요?

2. 당신 곁에 "이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나요? 다음에 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답의 첫 문장이 얼마나 짧은지 눈여겨봐 주세요.

3. 만약 당신이 한 주 동안, 입을 열기 전에 답을 한 문장으로 응축하는 연습을 하기로 정한다면, 당신의 어느 관계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보일까요?

출처: John Bowe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아직 어리니까"라며 얕잡아 볼 때, Dolly Parton이 걸었던 하나의 동작을 배우세요

2026년 9월 3일

앞으로 십 년, 당신은 "너무 어리다", "너무 새롭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번이고 얕잡아 보일 겁니다. 존엄을 지키면서 싸움 없이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동작이 있습니다.

이 글은 Dorie Clark가 2026년 8월 31일 CNBC Make It에 발표한 「When someone talks down to you, use Dolly Parton's simple trick to "maintain your dignity and disarm" them」에 대한 저희의 읽기입니다. 원문 (영어) 은 여기에서 →

함께 읽기: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 만드는 동작 → John Bowe와 「답을 먼저 놓기」

먼저 이야기 하나. 그 다음에,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1970년대의 어느 날,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Barbara Walters가, 스물두 살의 Dolly Parton과 마주 앉았습니다. Parton은 이제 막 뜬 컨트리 가수였고, 과감한 의상과 금발 가발, 짙은 남부 억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Walters는 아무것도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Parton의 뒤에서 수군대던 질문을, 그녀의 얼굴 앞에 그대로 놓았습니다. 옷, 몸매, 몸. 그리고 그녀의 출신을 파고들었습니다.

"Dolly," Walters는 말했습니다. "제가 사는 쪽에서라면, 당신을 hillbilly (촌뜨기) 라고 불렀을까요? 제가 hillbilly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들일까요?"

잠시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Parton입니다. 스물둘, 전국 방송의 카메라 앞, 이 한 문장이 눈앞에 떨어졌습니다. 당신이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두 길 중 하나를 갑니다.

첫 번째 길, 삼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살짝 웃는다. 이 순간이 지나가게 둡니다. 예의는 지켰습니다. 존엄은 넘겨줬습니다.

두 번째 길, 되받아 물어뜯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존엄은 지켰습니다. 대화에서는 졌습니다. 관중이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화를 냈다는 것이지,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Parton은 세 번째 길을 걸었습니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자부심 있고 품격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것은 시골식 품격이었지요, 하지만 그것도 엄연한 품격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배움이 많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참으로, 참으로 총명했습니다."

그녀는 두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 그 라벨을 인정했습니다. 시골 사람이 아닌 척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 라벨의 뜻을 스스로 다시 썼습니다. Walters의 입에서 "hillbilly"는 "뒤처지고, 세련되지 못한"이라는 뜻이었습니다. Parton의 입에서, 그것은 "자부심이 있고, 땅에 발을 딛고 있고, 책으로만 배우지 않는 지혜를 지닌"으로 바뀌었습니다. 같은 단어. 뜻이 뒤집혔습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Dorie Clark는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과 듀크 Fuqua에서 10년 넘게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이 동작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label upgrade (라벨 바꿔 붙이기)". 배울 수 있는 하나의 동작이고, 두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먼저 인정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 전제부터 반박한다. 그다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신의 언어로 다시 쓴다.

당신에게 왜 필요한가.

앞으로 십 년,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아직 어려서, 이건 이해 못 해."

"자넨 이 업계에 있어 본 적이 없잖아, 발언할 자격이 없어."

"영어 (또는 한국어) 는 네 모국어가 아니잖아, 잘 표현 못 할 텐데."

"들어온 지 아직 반년이야."

어떤 말은 선의로 옵니다. 어떤 말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돕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 방에서 당신보다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미리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작을 장전한 상태로 그 방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Clark가 든 예를, 당신에게 맞춰 다시 씁니다.

"넌 너무 어려" → "맞아요, 제가 이 방에서 가장 어립니다. 그래서 이곳에 10년째 있는 분들이 더 이상 하지 않는 질문을, 저는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필요한 건 바로 그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자넨 이 업계에 있어 본 적이 없어" → "네, 저는 새로 왔습니다. 그래서 오래 계신 분들에게는 이미 안 보이는 것들이, 아직 저에게는 보입니다. 제가 본 것을 말씀드릴 테니, 쓸모가 있는지는 당신이 판단해 주세요."

"영어 (한국어) 는 네 모국어가 아니잖아" → "네, 이것은 저의 제2언어입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두 번씩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이 습관은 나쁘지 않습니다."

각 문장의 구조를 보세요. 먼저 인정. 다음, 다시 정의. 열을 실지 않고, 돌리지 않고, 변명을 쌓지 않습니다.

중요한 주의 하나.

이 동작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신이 뒷부분을 실제로 믿을 때뿐입니다. "이게 제 강점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가슴 속에서 떨리고 있으면, 목소리가 그것을 상대에게 전합니다. 그때의 라벨 바꿔 붙이기는 외워 온 반박처럼 들립니다. 당신을 구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어색함 위에 어색함 한 겹을 더 얹습니다.

그러니 필요해지기 전에 연습합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해도 되고, 샤워하면서 연습해도 되고, 지하철에서 머릿속으로 굴려도 됩니다. "네, 저는 어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라는 한 문장을,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과 같은 감촉이 될 때까지, 소리 내어 말해 보세요. 그날이 왔을 때 떨림 없이 이 문장을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동작을 자기 안에 넣은 것입니다.

한 단계 더 물러나 봅니다.

Clark는 이 동작이 정말로 지키는 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을 정의할 권리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자기의 말로 "너는 누구인가"를 정해 주려 할 때, 당신이 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권리를 그 사람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언어로 응한다면, 그 권리를 되찾아 온 것입니다.

한평생을 두고 볼 때, 그 권리는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당신을 한 단어로 분류한 것은 어떤 단어였나요? 그 순간 당신은 세 길 중 어느 길을 갔나요, 삼켰나요, 되받아쳤나요, 아니면 바꿔 붙였나요? 그 뒤 당신은 자신이 조금 더 좋아졌나요, 아니면 조금 덜 좋아졌나요?

2. 지금 3분을 드린다면, 당신에게 가장 자주 붙는 라벨에 대한 "바꿔 붙이기"를 어떤 한 문장으로 쓰겠어요? 다 쓰면 자신에게 세 번 소리 내어 읽어 주세요. 듣고 있는 당신은, 그 문장을 믿나요?

3. 이 동작을 정말 잘하는 사람을 한 명 알고 계신가요? 그 사람이 할 때, 왜 그것이 "되받아치기"가 아니라 "진심"처럼 들리는지, 그 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그 진심의 질감을 당신은 어떻게 연습해 나가겠어요?

출처: Dorie Clark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당신은 딥페이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되세요

2026년 8월 27일

게이츠는 2023년에 이미 썼습니다. 딥페이크의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고. 삼 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더 이상 경고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과제입니다.

이 글은 빌 게이츠가 2023년에 쓴 「AI의 위험은 실제 존재하지만 관리할 수 있다」 (Gates Notes) 에 대한 저희의 읽기입니다. 원문 (영어) 은 여기에서 →

먼저, 한 가지를 받아들여 주세요.

당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금 보고 있는 이 영상은 가짜일 수 있다"를 기본값으로 삼아야 하는 세대입니다. 정치인의 연설, 유명인의 한 마디, 심지어 친구의 음성 메시지까지 AI로 합성될 수 있고, 그 합성은 점점 더 정교해집니다. 게이츠는 2023년에 이렇게 썼습니다. "딥페이크와,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짜인 허위 정보의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 삼 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이제 경고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휴대전화가 당신의 눈앞에 내밀어 주는 현실입니다.

무섭게 들립니다. 그러나 같은 글에서 게이츠는 또 다른 것도 썼고, 그럴 만한 근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위험들을 관리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가장 좋은 이유는, 우리가 전에도 해낸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당신은 겪지 않았지만 당신의 부모 세대가 통과한 파도를 떠올려 보세요. 1990년대 말, 사기꾼들이 자신을 "나이지리아의 왕자"라고 소개하며, 돈 옮기는 걸 도와주면 재산을 나눠 주겠다는 이메일을 뿌렸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넘어갔습니다. 조금씩, 사람들은 배웠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런 이메일을 보면, 굳이 멈추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반사 신경은 시간이 키워 준 것입니다. 딥페이크에 대해서도 같은 근육을 길러야 합니다. 다만, 훨씬 빠르게요.

게이츠가 든 또 다른 비유가 더 유용합니다.

계산기가 교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산수 선생들은 당황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칙연산을 잊을 것이라고. 다른 선생들은 몸을 돌려, 산수의 "뒤에 있는 이치"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받아올림이 그렇게 움직이는지, 왜 소수점이 그 자리에 놓이는지, 덧셈이 실제 가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의 선생들은 계산기에게 졌습니다. 뒤의 선생들이 키운 아이들은 계산기보다 강해졌습니다. 이치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AI와 같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AI는 당신의 숙제를 대신 써 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당신이 더 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게이츠는 Cherie Shields라는 영어 선생이 2023년 초 『Education Week』에 쓴 글을 인용합니다. 그녀는 ChatGPT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ChatGPT를 중심으로 수업을 짰습니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는지, 생성된 초안을 어떻게 읽는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찾아내는 법, 더 나은 판으로 다시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학생들이 배운 것은 "덜 쓰기"가 아니라 "더 잘 쓰기"였습니다. 그녀에게 AI는 대필자가 아니라, 숫돌이었습니다.

당신도 같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AI가 어떤 글을 써 오면, 그대로 제출하지 마세요. 세 가지를 먼저 하세요.

하나,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텅 빈 문장, 화려하지만 알맹이 없는 문장이 귀에 걸립니다. 그것은 AI의 말버릇이지, 당신의 언어가 아닙니다.

둘, 구체적인 주장 하나를 골라 확인하러 가세요. AI가 "연구에 따르면"이라고 썼습니다. 누구의, 어떤 연구, 어떤 저널인가요? 찾을 수 없다면, 지우세요. 찾을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당신이 무엇인가를 배운 것입니다.

셋, 가장 중요한 문단을 당신의 언어로 다시 쓰세요. 결과물은 당신에게 더 가깝지만 매끄러움은 줄어들 것입니다. 그 거친 결이 바로 당신의 서명입니다.

다 합쳐도 십 분쯤 걸립니다. 그러나 이 십 분이 하는 일은, AI를 "숙제 한 번 더 끝내 주는 도구"에서 "머리를 한 번 더 훈련시켜 주는 도구"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미지와 영상에 대해서는 규칙이 더 단순합니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콘텐츠를 만났을 때, 특히 강한 분노, 감동, 두려움을 느꼈을 때, 일단 멈추세요. 세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세요.

이 콘텐츠는 어디서 왔나요? 일차 출처인가요, 아니면 스크린샷의 스크린샷인가요?

내가 이것을 믿으면 누가 이익을 볼까요? 트래픽을 벌 곳인가요, 어떤 회사인가요, 어떤 정치 진영인가요?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무엇을 확인해 봐야 할까요? 역방향 이미지 검색은 있는가? 원본 영상은 있는가?

이 세 질문이 반사가 될 때까지 연습하면, 당신은 단톡방에서 가장 먼저 "잠깐, 이거 가짜일 수도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삼 년 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신의 동급생들은 이미 두 무리로 나뉘고 있습니다. 한쪽은 AI에게 숙제를 마치게 하고, 게시글을 쓰게 하고, 사과 문자까지 대신 쓰게 하다가, 조금씩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 갑니다. 다른 한쪽은 AI를 숫돌로 삼아, 더 빨라지고, 더 명료해지고, 진짜와 가짜를 더 잘 분간하게 됩니다. 십 년이 지나면, 이 두 무리는 같은 출발선에 서지 않습니다. 어느 쪽에 설지는 오직 당신의 몫입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마지막으로 "정말 충격적"이라고 느낀 영상이나 이미지를 공유하기 전에, 출처를 확인하러 갔었나요? 가지 않았다면, 얼마나 빨리 넘겼나요?

2. 당신 주위에서 가장 자주 "잠깐, 이거 가짜일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이 이 무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고 있나요?

3. 일 년 뒤, 선생님이 반 전체에게 "이 과제는 AI를 사용해도 좋다"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날의 당신은 "AI가 내 숙제를 끝내 준" 학생이고 싶은가요, 아니면 "AI로 더 잘 쓰게 된" 학생이고 싶은가요?

출처: Bill Gates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AI가 입문 단계의 일을 넘겨받기 시작할 때, 여전히 네가 쌓아 갈 수 있는 단 하나

2026년 8월 26일

게이츠는 젊은 세대가 이 전환의 최전선에서 먼저 부딪히고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AI가 당신을 대신해 키워 주지는 않는 두 가지도 이름 지어 말해 줍니다.

이 글은 빌 게이츠의 논고 「혼돈의 AI 시대가 왔다」 (Gates Notes, 2026년 8월) 에 대한 저희의 읽기입니다. 원문 (영어) 은 여기에서 →

먼저, 한 가지를 받아들여 주세요.

당신이 이제 막 발을 들이려는 이 노동시장은, 형이나 언니가 들어갔던 그 시장과 이제 같은 시장이 아닙니다. 게이츠는 아주 분명하게 씁니다. "생성 AI가 널리 도입된 이후, 대체 위험이 높은 자리에 있던 젊은 노동자의 고용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들의 손위 동료에게서는 그런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옮기면, 당신부터 먼저 부딪힙니다.

이것은 겁을 주려는 말이 아닙니다, 그가 지난 몇 년의 데이터에서 직접 본 현실입니다. 영업, 고객지원, 주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로펌 어시스턴트, 대출 초기심사, 데이터 정리, 환자 초기분류. 이곳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업계에 들어가는 첫 문"으로 지나던 자리였습니다. 그 문이 방 하나하나, 조용히 닫히고 있습니다.

서둘러 화내지도, 서둘러 절망하지도 마세요.

당신에게는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한 가지 강점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자주 AI를 쓰는 세대입니다. 게이츠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가 특히 당신 세대를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들이 "AI의 능력과 그 발전 속도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명료함은 짐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문제는 "보인다"와 "쓸 줄 안다"는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십 년, 당신의 삶을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AI가 대신 키워 주지는 못하는 두 가지입니다. 비판적 사고, 그리고 평생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인내. 이 둘은 게이츠가 이 글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비 조사를 인용합니다. "AI 사용이 많을수록 비판적 사고가 약해졌으며, 그 효과는 젊은 사용자에게서 더 강했다." 그리고 이어 씁니다. "딥페이크와,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짜인 허위 정보의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 인류가 비판적 사고를 잃으면 안 될 시대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대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AI에게 리포트를 통째로 쓰게 할 때마다, 기획서를 통째로 뽑게 할 때마다, 당신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마감을 맞추는 일. 다른 하나는, 원래 거기 있어야 했던 "막힘"의 순간을 뇌가 건너뛰게 두는 일. 심리학자들은 그 막힘을 productive struggle (생산적인 씨름) 이라고 부릅니다. 기분 나쁘고, 느리고, 키보드를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AI가 그렇게 말했다"를 "나는 왜 그렇게 되는지 안다"로 바꾸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 두 상태 사이의 거리가, 당신과 지금 옆에서 경쟁하는 동기 사이의 거리입니다. 십 년이 지나면, 그것은 당신과 시장이 조용히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됩니다.

조너선 하이트가 『불안의 세대』라는 책을 썼습니다.

게이츠는 그중 한 문장을 인용합니다.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어린 나무처럼, 자라는 동안 작은 위험을 규칙적으로 겪은 아이들은 훨씬 큰 위험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어른이 된다. 반대로, 보호받는 온실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숙에 이르기도 전에 불안에 짓눌려 버리기도 한다."

하이트는 원래 소셜미디어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게이츠는 그것을 AI로 옮겨 옵니다. "당신을 절대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설계된 AI 동반자는, 그 자체로 거대한, 보호받는 온실입니다."

당신은 아마 이미 AI와 대화하고, 답답함을 쏟아내고, 어색한 메시지를 대신 쓰게 하고, 친구와의 갈등에 대해 상담받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는 큰일이 아닙니다. 모아 놓으면, 당신은 조금씩 자신을 온실 안으로 옮겨 넣고 있는 것입니다. 온실 안에는 바람이 없고, 언제나 따뜻하고, 언제나 대답이 있습니다. 동시에 당신은, 바람 한 번 맞으면 다시 몸을 세울 수 있는 힘을, 조금씩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문장만 드립니다.

AI로 씨름을 건너뛰지 마세요. AI로 씨름의 효율을 올리세요.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합니다. AI가 답을 건네주면, 그에게 되물어 보세요. "당신은 어떤 질문들을 거쳐 이 답에 이르렀나요?" 추론의 경로를, 질문의 형태로 늘어놓게 하세요. 그런 다음 창을 닫으세요. 그 길을, 당신의 두 발로, 다시 걸으세요.

겉으로는 오 분을 더 쓰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동작은 AI를 "숙제를 대신 끝내 주는 도구"에서 "머리를 훈련시켜 주는 코치"로 바꿉니다. 같은 과제도, 앞의 방식은 당신을 AI에 더 의존하게 만들고, 뒤의 방식은 어제보다 오늘의 당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십 년이 지나면,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이츠는 글의 끝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기계가 우리 대신 사고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 안의 "사람"에 해당하는 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지킬 것인가?" 당신은 그를 위해 이 큰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다음 과제 안에서, 당신 자신을 위해 답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질문

1. 최근 AI에 맡긴 일 중에서,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내가 씨름했어야 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나요? 만약 스스로 해냈다면, 무엇을 배웠을까요?

2. 당신 가까이의 친구들 중, 가장 자주 당신과 의견이 다르고, 가장 자주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불편함은 챗봇이 결코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당신에게 주고 있나요?

3. 2030년 당신의 첫 직업이 오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날까지 당신은 어떤 한 가지 능력으로 "알려지고" 싶은가요?

출처: Bill Gates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커피 서빙"이 "인턴십"으로 불리는 시대에

2026년 8월 23일

Bloomberg가 쓴 것은 영국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중국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미국에서 보고 있는 것은 같은 일의 다른 버전입니다. 이 글은 그 한 잔의 커피에서 시작해, 앞으로 십 년 동안 당신의 어떤 부분이 진짜로 중요해질지까지, 실을 따라 풀어 갑니다.

Danny Monks 는 스물한 살, 영국 본머스대학교의 학생입니다. 지난 여름 그는 몇 달을 들여 여름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결국 런던의 오스트레일리아식 브런치 체인 Daisy Green 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커피를 서빙하고,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치우는 일. 시급은 영국의 법정 최저임금인 £12.21. 우리가 예전에 그저 "여름 아르바이트"라고 불렀던 그 자리를, 채용 공고는 "인턴십"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Monks 는 자기가 하는 거래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어차피 졸업 뒤에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하게 될 것 같으니, 차라리 여기에 지원해서 이력서에 summer internship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으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한 카페의 재치 있는 마케팅이 아닙니다. Bloomberg 보도의 뒤에는 단단한 숫자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59% 의 고용주가 "인턴십"을 제공했다고 답했고, 2018년의 48% 에서 올랐습니다. 런던은 80%. 이유는 고용주가 갑자기 친절해져서가 아닙니다. 지원자가 자리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한 고용 변호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채용 압박 상황에서는 고용주가 "조금 더 까다로워질 여유가 있다"고.

그러나 정말로 심장이 내려앉는 것은 그 뒤에 있는 또 다른 숫자입니다. 영국에서는 2025년 말 기준으로, 16 세에서 24 세 사이 젊은이 중 유급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절반 정도뿐이었습니다. 2026년 3월, 영국 전국의 신입 사원 대상 채용 자리는 10,667 개, 1년 전보다 35% 감소. 십 년 전 최고치는 55,000 개였습니다. 앞 세대가 당연하게 손에 넣던 "첫 번째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국 노동 시장: 신입 대상 입문 일자리 vs 인턴십 (2022 vs 2026, 100만 채용 공고당)
30K20K10K0~24K~8K~10K~8K20222026
신입 대상 입문 일자리 인턴십 자리

지난 4년 동안 영국의 신입 대상 입문 일자리는 크게 줄었고, 인턴십 채용 공고는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서비스업 일자리에 "인턴십"이라는 라벨이 다시 붙여지는 현상 뒤에 있는 힘입니다. 그림 속 수치는 개괄적이며, 변화의 방향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데이터: Indeed (Bloomberg 2026-08-21 보도 인용)

그리고 이것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보이는 공무원 시험 준비 열풍과 대학원 진학 조류. 미국에서 보이는 side hustle 과 gig work 의 확산. 일본과 한국에서 보이는 "독립의 지연", 이십 대 후반에도 부모 집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 이것들은 모두 같은 사건의 다른 판본입니다. 후기 산업화에 들어선 모든 선진 경제가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표준적인 첫 번째 일자리"의 수가, 졸업해 나오는 젊은이 수보다 훨씬 적습니다. 어느 나라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느 나라나 임시로 답을 조립하고 있는 중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난 이십 년 동안 거의 모든 주요 경제에서 대학 교육이 확장되었습니다. 졸업생 수는 늘었지만, 경제가 제공할 수 있는 "표준적인 첫 번째 일자리"의 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둘째, AI 가 조용히, 이전에 신입 사원에게 맡기던 "단순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이터 정리, 초안 작성, 기본 분석, 자주 있는 고객 문의 응대. Bloomberg 기사도 이 점을 직접 지적합니다. 셋째,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자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줄어든 입문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것은, 십 년 전 지원자가 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워졌습니다.

이십 대 초반의 당신이 여기까지 읽고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면, 아마 그것은 정확한 반응입니다.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구조가 바뀐 것입니다. 두 주 전에 저희는 이 사이트에서, Bloomberg 에 이렇게 말한 하버드 3학년 학생 한 명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배움 자체를 위해 배우는 것'이 앞으로의 취업 기회를 이긴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그 말은 자기가 있는 시장에 대한 냉정한 판단입니다. 그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잠시 멈춰서 살펴봐야 할 함정이 있습니다. 문이 좁아질 때, 본능적인 반응은 "그 좁은 문을 더 세게 밀자"입니다. 더 많은 자격증, 더 많은 인턴십, 더 완벽한 GPA, 더 화려한 이력서. 하버드가 이번 여름 규칙으로 억제하려 한 것이, 바로 이 반응이 도달하는 종착점이었습니다. 세계에서 학업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의 한 무리가, 스스로를 "호기심을 갖지 않도록, 위험을 피하도록, 미래에 점수가 되지 않는 것은 배우지 않도록" 훈련시켜 놓았습니다. 좁은 문을 더 세게 밀어도, 문은 넓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무엇일까요? Bloomberg 의 같은 기사 안에, LinkedIn 의 경력 연구자 한 명의 말이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진짜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전통적으로 가장 자격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고, 기회가 나타나는 순간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 주장 자체가 새롭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것은 이 순간이 이 말에 부여하는 구체성입니다. 모두가 같은 모양의 이력서로 경쟁하는 대신, 시장이 아직 "라벨을 붙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길입니다.

카메라를 가장 멀리 당겨서 봅시다. "안정된 입문 자리가 대규모로 사라진다"는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산업혁명은 몇 백 년의 수공업 도제 제도를 해체했습니다. 전후 베이비붐은 1960년대의 젊은이들을 전례 없는 취업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미국의 한 세대 대학 졸업생의 첫 번째 일자리를 몇 년씩 미뤘습니다. 그때마다 당시에는 길이 다 막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나중에 멀리까지 간 사람은, "그 시대의 가장 뜨거운 산업을 맞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배운 사람, 어떤 구체적인 것에 진심으로 관심을 유지한 사람, 초심자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삼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AI 때문에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이 글을 닫기 전에 자신에게 하나만 물어본다면,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이번 한 해 동안 내 안에, 이력서에는 오르지 않는 무엇이 자랐을까?" 다음 일자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십 년, 이십 년을 위한 것. 시장이 조용히 "덜 중요하다"고 판정하고 있는 것은 "인턴 경험 있음" 이라는 한 줄입니다. 시장이 조용히 "더 중요하다"고 판정하고 있는 것은, 계속 배우는 사람, 낯선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고 설 수 있는 사람, 아무도 다음 걸음을 알려 주지 않을 때 스스로 다음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오늘부터 되어 갈 수 있습니다. "인턴"이라는 직함을 누군가에게 먼저 받아야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출처: Maddie Parker · Irina Anghel · Bloomberg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준비가 된 다음"이 아니어도 됩니다

2026년 8월 16일

여든넷의 여성이 두 세대의 젊은이들이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이 글은 그녀의 한 문장을 오늘 밤 당신이 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으로 펼쳐 보는 시도입니다.

여든넷의 Gail Rudnick은 서른 살 손녀 Kim과 함께 《Excuse My Grandma》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합니다. 그녀는 자기 세대의 "3개월 만에 만나고 4개월 만에 결혼한다"는 규칙에 떠밀려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손녀의 세대가 그 반대를 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결혼하지 않기. 직장을 바꾸지 않기. "전공과 상관없지만 늘 해 보고 싶었던 것"을 시작하지 않기. 그녀에게는 분명히 보입니다. 두 세대가 갇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감정입니다.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녀의 조언은 단 한 문장입니다. 기자는 그것을 헤드라인으로 뽑았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해도 됩니다."

아마도 비슷한 말은 팔백 번쯤 들었을 것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스크롤하지 마세요. 저희가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은 이 한 문장의 메커니즘이지, 또 하나의 위로 말로서가 아닙니다.

"준비되었다"는 이상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한 "후"에야 손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 한 가지를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그 느낌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조금만 더 알아보자" "조금만 더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자"로는 해결되지 않는 종류의 느낌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동안은 준비는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서툴러도, 다음 한 걸음이 이미 발밑에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니 "완벽을 좇는" 것은 성실함이 아닙니다. 양복을 입은 미루기입니다. 준비하고 있다는, 알아보고 있다는,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을 줍니다. 하지만 순 결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와 정확히 같습니다. 차이는 이 "완벽 추구식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머릿속에 하나의 일을 기르고 있고, 그것은 하루 종일 당신의 백그라운드에서 조용히 메모리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Rudnick은 기자가 각주처럼 다룬 어떤 것을 꺼냈습니다. 저희는 그것에 굵은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그녀는 79세에 이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미디어 경력 없음. 콘텐츠 업계 경력 없음. 인플루언서 실적 없음. 79세의 어느 날, 손녀와 마이크 앞에 앉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그 새로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으로 산수를 해 주세요. 20대 초반이라면, 앞으로 약 60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할 시간이 있습니다. 30대 초반이라면 50년.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수학입니다. "인생에는 한 번의 기회밖에 없고, 그것을 단번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명이 훨씬 짧았던 시대에서 물려받은 착각입니다. 더 이상 당신의 인생에 맞지 않습니다.

오늘 밤, 우스울 정도로 작은 일 하나를 부탁드립니다. "준비해 왔던" 채로 시작하지 않은 그 한 가지를 골라서, 가장 못생긴 첫 번째 버전을 만들어 주세요. 책을 완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단락만 쓰세요. 언어를 익히지 않아도 됩니다, 수업 한 번만 들으세요. 전액을 저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달만큼만 저축하세요.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보내세요. 이 첫 버전은 지우고 싶을 만큼 못생겼을 것입니다. 부디 지우지 마세요. 앞으로 만들 모든 "더 나은 버전"이 서 있을 땅이 됩니다.

확신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시작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79세에 처음 마이크 앞에 앉은 한 여성이 한 번 증명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밤,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출처: CNBC Make It, interview with Gail Rudnick (84) & Kim Murstein (30)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이 방에서 가장 정직한 한 문장

2026년 8월 14일

하버드의 열아홉 살이 이 시대에서 가장 정직한 한 문장을 기자에게 건넸습니다.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그녀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는 당신을.

이번 주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하버드가 2027년 가을부터, 학부 모든 수업에서 A 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을 반의 20% (거기에 네 명 추가)까지로 제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쉬운 말로, 하버드의 A가 더 받기 어려워집니다.

이 정책 자체는 아마도 당신과 상관없을 것입니다. 제가 마음이 가는 것은, 블룸버그 기자가 캠퍼스에 가서 재학생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한 마디입니다. 역사와 심리학을 공부하는 3학년 Colleen Meosk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1학년 때만큼 모험적이지 않아요. '배움 그 자체를 위해 배우는 것'이 앞으로의 취업 기회를 이긴다고 보지 않아요."

섣불리 그녀에게 딱지를 붙이지 마세요. 그녀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하버드에 합격한 열아홉 살입니다. 야심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지, 그 기계가 "차선을 벗어나는 사람"에게 얼마나 냉정한지를 뼈아플 만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저, 이 시대가 모든 학생의 가슴 위에 얹어 놓은 것을, 한 문장으로 말했을 뿐입니다.

이 문장이 조금 아프다면, 당신은 뜻을 이해한 것입니다. 수업을 고를 때, 전공을 고를 때, 프로젝트를 고를 때,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저울이 더 이상 "내가 이것에 호기심이 있는가?"를 묻지 않고 "이것이 이력서에 점수가 되는가?"를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지 모릅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배운 마지막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눈앞의 문들, McKinsey, Google, 아이비 대학원, 투자은행, 로스쿨,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점 부족하면, 문 하나가 닫힌다. 하버드 학부 교육 학장이 자기 입으로 말했습니다. "모두가 A를 원한다. A가 매킨지나 구글에 취업하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A를 받는다면, A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당신은, 기준을 계속 올리는 군비 경쟁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조심스러움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들어 주세요. 한 나라의 학업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지 않는" 쪽으로 학습되고 있을 때, 그 나라는 그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 갑니다. 당신에게 남아 있는 그 은은한 통증은, 그것이 아직 당신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매우 깊은 곳으로 밀려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당신에게 진로를 포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작은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학기, 이미 짜 놓은 "쓸모 있는" 수업들 사이에, 당신을 위한 것 하나를 몰래 되찾아 오세요, 아무 목적 없이 읽는 책 한 권, 순수한 호기심으로 청강하는 강의 한 시간, 이력서에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주말의 무엇 하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숨겨 왔던, 아직 죽지 않은 그 호기심이라는 기계가, 한 번만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세요.

언젠가 당신은 그 기계를 필요로 하는 날이 옵니다. 일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날이 오면, 열아홉 살에 스위치를 완전히 꺼 두지 않은 자신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출처: Janet Lorin · Samuel A. Church · Bloomberg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당신도 분명하게 말해도 됩니다

2026년 7월 5일

어른들은 지시를 질문으로 감싸곤 합니다. 당신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필요해"라고 하고 싶은데, "아무거나"라고 말해 버리는 것.

아동 발달 연구자 Siggie Cohen 은 5,000 가정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랜 시간 일해 왔습니다. 그녀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 것 하나: 어른들은 지시를 질문 안에 숨깁니다.

뒤집어 보면, 당신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게 하고 싶어"라고 하고 싶은데 "아무거나"라고 말해 버립니다. "피곤해"라고 하고 싶은데 "괜찮아"라고 말해 버립니다. "도와줘"라고 하고 싶은데 "네가 정해"라고 말해 버립니다.

어른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다만 마음속을 읽을 수 없을 뿐입니다. 당신이 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수록, 어른들은 당신을 돕기가 쉬워집니다, 짐작하고, 틀리고, 또 짐작하는 반복 없이.

"조금 조용히 있고 싶어요. 10 분만 있다가 다시 물어봐 주실래요?"

"게으른 게 아니에요. 진짜로 못 알아듣겠어요. 한 번 더 같이 봐 주실 수 있어요?"

"오늘은 학교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이야기 할까요?"

분명히 말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쪽 모두를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어른은 짐작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은 짐작이 빗나가서 화내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자라서 상사에게, 파트너에게, 친구에게, 의사에게 분명히 말해야 하게 됩니다. 그 연습은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 번, 시도해 보세요. 가장 하고 싶은 그 한 문장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는 것.

출처: Siggie Cohen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

연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2026년 6월 1일

주위의 표정을 늘 살피는 당신에게, 이제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곱 가지.

누군가는 이십 년 동안 이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EQ 가 높은 아이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다만, 어른 앞에서 "연기할" 필요가 없는 아이일 뿐이다.

이제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곱 가지.

·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피곤해"라고 말하는 게 물건을 던지는 것보다 훨씬 쉽다.

·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믿는 어른에게 말해도 된다.

· 이기지 않아도 됩니다. 실망은 좀 울고, 잠깐 쉬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 다른 사람의 감정에 눈치를 채도 됩니다. 오지랖이 아니라, 재능이다.

· 사과해도 됩니다. 용서받아도 됩니다. 이것은 어른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 원하는 걸 말해도 됩니다. "안아 주세요" "잠깐 혼자 있게 해 주세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어른을 위해 연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른의 기분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어른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자신을 작게 접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 당신. 그대로, 이미 충분합니다.

출처: Reem Raouda

이 글을 단독 페이지로 열기 →

독자 의견

다 읽으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러오는 중…